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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없이 달리기

[별일 없이 달리기] 경쟁하는 달리기.

팍슈티츠(Wachtets) 2023. 8. 3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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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대 대부분을 경쟁하는 삶을 살았다. 정확히 말하면 경쟁이라는 요소를 자기 발전의 양분으로 삼았다.

어제의 나를 이기는것이 올바른 성장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하기 싫은 일들로 이루어진 내 하루에 경쟁이라는 요소마저 빠져버리면 하루의 연료가 될 것이 없었다.

 

물론 경쟁을 양분으로 성장하는 삶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쟁의 뒤에는 나와 타인을 비교하는 삶, 그리고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삶이 존재한다.

 

나는 20대에 20만원 정도 되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때가 있었다.

싸구려 생활자전거로 다른 사람들을 따라잡거나, 추월하는것은 또 다른 하나의 재미였다.

왜냐면 오로지 '내 실력'으로 상대방을 이긴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추월하거나 비슷한 속도로 달리는 라이더가 있다면,

경주말처럼 앞사람을 바짝 따라가고 지치게 하는것이 또 다른 경쟁이었으면 라이딩의 재미였다.

 

전체적으로 이런 경쟁은 나를 성장시킨것이 사실이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변명하는 습관을 줄여주었으며, 때로는 정신력으로 버텨 신체를 성장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의 페이스는 없었다.

 

30대에 접어들자 슬슬 나만의 '속도'라는 개념을 알기 시작했다.

나는 늘 속도가 빠른편이었지만 남들과 속도를 맞추는데는 어리숙했다고할 수 있겠다.

나는 과거에 이 점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개인 플레이의 또 다른 동의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부끄러워할 것도 아니지만..)

 

 

달리기를 시작했을때도 나름 침착함을 유지하자고 마인드셋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트랙 앞에 있는 주자나 공원에 앞 주자가 보이면 따라잡기 바빳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는 이정도 속도에서도 안정감있게 달려"라는 점을 외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 컷던것일 지도.

때로는 의식적으로는 내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애써보기도 했지만 내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기질이라는것은 의식적으로 컨트롤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인듯하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나 조차 이 속도에 사로잡혀간다라는 느낌을 갖으면서 부터 시작됐다.

결론적으로 내 몸은 내 의지만큼 강하지 않았다.

아니, 원래 몸이란것은 약하다. 그리고 인간의 몸은 모든 포유류 중 가장 연약한 몸뚱아리를 가졌다고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걷지 않고 다소 건강하지 못한 음식들을 먹는 생활 습관은 이 몸뚱아리를 더 퇴화시키기에 충분했다.

나는 이 점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경험해본것은 불과 1년 전의 일이다.

 

달리기에 항상 재미를 들리던 시절, 페이스를 슬슬 올려가던 시기가 있었다.

매일 달린지 9개월 정도에 접어들던 때라 나름 내 체중 대비 잘 뛰었던것도 사실이다.

(짧은 거리긴 해도 내 체중에 5분 페이스로 뛰는데 크게 어렵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세상에 고수는 많다. 아니 어쩌면 아직 나는 세상에 얼마나 많은 고수들이 있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는것일지도..

때는 집 근처에 있는 수로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을때였다. 새로 *카본화도 샀겠다.

본격적으로 페이스를 올려보고 싶었다.

때마침 나보다 조금 빠른 주자가 있었다. 나는 마지막 500m를 인터벌이라는 명분하에 최고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했듯이 상대방에게 나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은 과시욕과 함께....

그렇게 나의 22년 달리기는 끝이 났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나는 나만의 페이스를 다시 한번 찾아 가는 중이다.

아직 찾아가는 중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아직도 내 기질이 내 의지를 이길때가 가끔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에서 벗어난 달리기를 하는데 팁을 하나 얻었다.

나보다 빠른 사람이 있으면 '저 사람은 오늘 단거리 훈련을 하러 나왔나보다'하고 보내주는거다.

달리기에 있어서 속도란 오늘 달릴 거리에 반비례하기 나름이다.

같은 장소에 모여있는 러너 각자가 어떤 훈련을 위해 자리했는지 개인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어떤 주자가 나보다 빠르다고 하더라도 따라잡는 행위를 할 필요가 없다 '내가 더 멀리간다'라고 생각해버리면 마음이 좀 편해진다.

 

그래도 가끔은 아직 보여주고 싶은 일종의 기질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점차 나아진다고는 말할 수는 있는것이. 이제는 남들의 속도보다는 내 몸의 통증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경쟁엔 끝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달리기에서의 경쟁은 다른 스포츠보다더 더 무의미한것 같다.

나는 마라톤 주자들이 42.195km를 달리고서도 왜 숨차하지 않는가?라는 점에 의문이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자세히 얘기하는게 나을듯 하다. 

간단히 얘기해보자면 다리가 심폐지구력을 따라오지 못한다. 그러니까 내 의지로 앞서가고 싶어도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막판 100m스퍼트는 의미가 없다.

순전히 내가 그동한 훈련해온 페이스로 완주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만이 기준으로 남는것이다.

애당초 내가 시작한 달리기는 경쟁 종목이 아니었는데 그 본질을 깨닫지 못했는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생각도 어느 무렵에 갑자기 U턴을 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최근에는 경쟁하지 않는 달리기를 통해서 성장했다는 것 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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